이번 포스팅은 실질과세 원칙과 조세법률주의, 그리고 그와 관련된 판례를 살펴본다. ‘실질’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세기본법 제14조를 알아야 한다.
국세기본법 제14조(실질과세) ① 과세의 대상이 되는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귀속이 명의(名義)일 뿐이고 사실상 귀속되는 자가 따로 있을 때에는 사실상 귀속되는 자를 납세의무자로 하여 세법을 적용한다. ②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 ③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나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방법으로 이 법 또는 세법의 혜택을 부당하게 받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경제적 실질 내용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를 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를 한 것으로 보아 이 법 또는 세법을 적용한다. |
국세기본법 제14조는 세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명의’, ‘형식’과 ‘실질’이 다르다면 ‘실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을 다룬다.
제14조 제1항은 세금을 부과 시 과세대상의 ‘귀속’을 정해야 할 때 ‘명의’, ‘형식’이 아닌 ‘실질’에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귀속’ 외에 세금 계산에 필요한 다른 사항들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007년 말에 새로 만들어진 제3항은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형식과 실질이 괴리된 거래행위를 부인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머리속으로 되뇌며 실질과세 원칙과 관련된 판례들을 읽어 보자.
실질과세 원칙과 조세법률주의
다음의 판례들은 실질과세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이며, 지금까지 대법원이 실질과세 원칙과 조세법률주의 사이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해왔는지 알 수 있다.
대법원이 항상 일관된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판례 90누3027에서는 대법원이 조세법률주의의 입장을 취하였다.
원고와 갑이 서로의 토지를 교환 후 다시 법인인 을에게 양도한 행위가 양도소득세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일지라도 이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법률상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실질’과 같은 불명확한 개념에 근거하여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과세의 근거 규정이 있어야 과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례 91누7170에서는 대법원은 다시 실질과세 원칙의 손을 들어주었다. 토지 매매계약서상의 매수인 명의를 실질적 매수인인 법인 대신에 그 대표이사 개인으로 한 사안을 매도인이 과도한 양도소득세의 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가장매매행위로 본 것이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매도인은 단순히 양도소득세의 중과를 피할 목적에서 불필요한 거래 행위를 개입시켜 ‘명의’와 ‘실질’ 사이에 괴리가 일어났다고 판단하고 실질과세의 입장을 따랐다.
따라서 대법원은 ‘형식’과 ‘실질’을 고려하는 사안에서 실질과세의 원칙이나 조세법률주의 사이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확고하게 정해진 입장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거래의 법적인 ‘형식’과 ‘실질’이 괴리된 경우 대법원은 정말 골치가 아플 것이다.
판례2017두59253에서 대법원은 명의와 실질의 괴리가 조세를 회피할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에는, 그 재산에 관한 소득은 그 재산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자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아 그를 납세의무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형식과 실질의 괴리는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그 목적이 조세회피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 판단기준을 정하고 적용하는 일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마 대법원이 항상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실질과세 원칙에만 치중하여 과세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과세권 남용으로 이어져 납세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는 과세요건 법정주의와 명확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조세법률주의에 반하게 될 것이다.
판례 2015두3270를 보면, 납세의무자는 경제활동을 할 때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과세관청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거래상에서 일정한 법적 형식을 취했으나 그 경제적 실질이 다른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도 그 또한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또한 판례 90누3027의 토지 교환행위는 가장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를 부인하기 위하여 법률상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입장은 실질과세 원칙에만 치중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합의점
그렇다면 과연 실질과세의 원칙과 조세법률주의 사이에서 어떠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는 판례 2008두8499에서 알 수 있다.
대법원은 실질과세의 원칙은 조세법의 기본원리인 조세법률주의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이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세법률주의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범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또한 이를 위해 고려해보아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판례 2011두9935, 2015두46963을 보면 실질과세를 부여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여러가지 사항들을 알 수 있다. ‘명의사용의 경위와 당사자의 약정 내용, 명의자의 관여 정도와 범위, 내부적인 책임과 계산 관계, 과세대상에 대한 독립적인 관리·처분 권한의 소재 등’, ‘당사자가 그와 같은 거래형식을 취한 목적, 제3자를 개입시키거나 단계별 거래 과정을 거친 경위, 그와 같은 거래방식을 취한 데에 조세부담의 경감 외에 사업상의 필요 등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 각각의 거래 또는 행위 사이의 시간적 간격, 그러한 거래형식을 취한 데 따른 손실 및 위험부담의 가능성 등’과 같이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결론
사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실질’이라는 의미는 극도로 불명확하다. ‘실질’의 의미는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비합리적인 ‘형식’을 취하는 경우에는 ‘형식’이 아닌 본연의 담세력이 있는 곳에 과세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 좀 유치하게 표현해 본다면 ‘진짜 세금을 낼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정말 간단해 보이지만 실질과세 원칙과 조세법률주의 간의 균형을 잡고 조세정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의 첫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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